반복되는 '3주 패턴': 마지막 과목을 내가 직접 끝내며 깨달은 것
POCU 동영상 강의에는 이미 사람이 한 번 정리해둔 자막 원고(transcript)가 있다. 내용은 대체로 정확한데, 줄바꿈과 문장부호가 제멋대로여서 자동화 파이프라인에서 활용하려면 다시 손을 봐야 했다. 그 작업을 몇 년 동안 한 수강생이 알바 형태로 꾸준히 도와주고 있었다.
그 친구는 여러 과목을 작업해줬는데, 이상하게도 패턴이 늘 똑같았다.
정확히 3주 분량까지는 잘 한다. 그리고 잠수를 탄다.
몇 달 뒤에 미안하다고 나타나서 또 3주 치를 끝내고, 다시 잠수. 이게 과목을 바꿔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 친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 작업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종류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걸 이번에야 아주 정확하게 깨달았다.
마지막 과목, 8개월의 공백
이번에 맡겼던 건 정말 마지막 남은 과목이었다. 이거 하나만 정리하면 몇 년간 이어져 온 자막 원고 개선 프로젝트가 끝나는 상황이었고, 그 친구도 늘 해오던 방식대로 3주 치를 잘 끝냈다.
그리고 잠수. 그리고 3주 뒤에 다시 등장해서 너무나 미안해했다. 메시지 너머로 '미안함'과 '압박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해야 하는데 못 하고 있다'라는 그 특유의 무거운 감정.
그리고 또 3주 치를 끝내고는 다시 잠수를 탔다. 이번에는 유독 길었다. 거의 8개월.
지난 번 그 친구가 보여줬던 그 '미안함'의 무게가 너무 커서, 이번에는 더는 그렇게 끌면 서로에게 좋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과목은 결국 내가 직접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3주에서 멈춰버렸다
막상 시작해보니 웃기게도, 나도 똑같이 3주 분량에서 손이 멈추더라.
처음엔 꽤 순조로웠다. 문장 정리하면 깔끔해지는 게 눈에 보이고, '이거 괜찮네?'라는 느낌도 들고, 속도도 잘 나온다.
그런데 3주 분량이 넘어가는 순간, 갑자기 끝없는 반복만 남는다. 흥미도 사라지고, 동기와 체력이 동시에 빠져나간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지기까지 한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걸 3주만 하고 잠수 탔던 그 친구의 마음이 정확히 이거였겠구나."
사실 나는 속으로 살짝 '왜 끝까지 못 하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똑같이 멈춰버리는 걸 경험하고 나니, 그 친구를 비난할 자격이 나에게는 1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친구는 나보다 나았다. 적어도 몇 달 뒤에 미안하다고 돌아올 용기는 있었으니까. 나는 그냥 스스로에게 짜증만 냈다.
다시 마음을 붙잡기 위해, 이유를 하나씩 쌓아 올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었다. 마지막 과목이니까. 내가 던지면 아무도 이어받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책상 앞으로 끌어내기 위해 몇 가지 이유를 하나씩 쌓았다.
1) 이걸 끝내야 자동화 파이프라인이 제대로 열린다
지금 귀찮아도, 이 작업을 끝내놓으면 미래의 귀찮음이 수백 번 줄어든다.
2) 이걸 끝내지 않으면 재미있는 일을 할 자격이 없다
새 강의, 시스템 개발, 재밌는 실험들… 다 하고 싶은데 이 숙제가 남아 있으면 마음이 계속 걸린다.
3) 그리고 마침 며칠 아팠다
참 이상한 이야기인데,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은 몸이 안 좋을 때 도저히 손이 안 가지만 단순 반복 작업은 오히려 아플 때 잘 된다. 컨디션이 가장 엉망이던 날, 이 작업 속도가 제일 빨랐다.
이런 것들을 붙잡고, 다시 '기계 모드'를 켜기로 했다.
결국 나는 또 기계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기계 같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때도 많았는데, 이번 일을 하면서 다시 실감했다.
나는 감정을 잘 누르고, 재미없고 지루한 일을 '하기로 결정한 순간' 꾸역꾸역 끝까지 밀고 가는 사람이다. 감정은 그냥… 나중에 처리하면 되니까.
그래서 결국 남은 분량을 5일 만에 끝냈다.
정말 기계처럼.
"남들은 아파하는 일을 내가 덜 아파한다면 그게 내가 할 일이다"
마지막 파일을 저장하고 나서 예전에 읽었던 Atomic Habits의 내용이 떠올랐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취지는 이랬다.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지는 그 일을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주는 고통을 남들보다 덜 느끼느냐가 기준이다. 남들이 힘들어할 때 내가 덜 아프게 버티고 있다면 그 일이 바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이번 자막 원고 정리 작업이 정확히 그랬다.
남들에게는 너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인데 나는 (정말 억울하게도) 그 고통을 조금 덜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 이 긴 작업을 끝까지 붙잡은 사람이 나였다.
솔직히 말해 그게 자랑은 아니다. 그냥… 성격이 이렇게 태어먹었다. 좋게 말하면 꾸준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고, 더 솔직히 말하면… 좀 답답한 인간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런 일을 끝내야 하고, 그게 하필 나였던 것뿐이다.
그리고 이제야 다음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생각해보니, 이 Atomic Habits 책은 예전에 유튜브로 소개한 적도 있다. 아래가 그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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