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소스 코드'를 듣고: 개발자로서 공감했던 순간들

김포프 2025-04-29

빌 게이츠의 'Source Code: My Beginnings'를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유명인의 자서전은 보통 누가 대신 써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꽤 다르다. 빌 게이츠 본인이 많이 관여했다는 게 문장 곳곳에서 느껴졌고, 자기 삶을 다소 객관화해서 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물론 기억 보정이나 미화가 없진 않겠지만, 듣는 입장에서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책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성기 이야기가 아니라, 그 전의 개인적인 성장 과정에 집중돼 있다. 어릴 적 이야기부터, 친구들과의 경쟁, 하버드 시절,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초창기까지. 기술적으로 엄청난 인사이트가 쏟아지는 책은 아니지만, 개발자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빌 게이츠가 자기 자신을 꽤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내가 이건 잘하지만, 저건 부족하다"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똑똑하다는 걸 모를 리는 없었겠지만, 그게 곧 '나는 모든 걸 잘 안다'는 태도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르는 걸 빨리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강점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꽤 일찍 자리 잡은 사람 같았다. 이런 자기 인식 능력이 결국 그를 더 멀리 보게 만든 거 아닐까. 듣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자아성찰이 가능한 IQ는 어느 선부터일까?'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꼽자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초기에 베이직(BASIC) 인터프리터를 MITS라는 회사와 계약하면서 생긴 라이선스 문제다. 당시 MITS는 베이직에 대한 배포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MITS가 다른 회사에 인수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베이직의 원 저작자이고, 더 이상 MITS와 엮이지 않고 다른 회사에 이걸 판매하려고 했지만, MITS 측은 여전히 권리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우기며 사실상 방해만 하게 된다. 팔아주지도 않으면서 쥐고만 있으려는 식.

게이츠는 이 상황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꽤 빠르게 눈치챈다. 그래서 계약서를 다시 들여다보고, 어떻게든 법적으로 빠져나올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느껴진 건 단순한 기술 천재성보다, 사업가로서의 감각과 집요함이었다. 무언가를 "잘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언제 "접어야 할 때"인지 아는 능력. 그건 정말 배우고 싶은 부분이었다.

책을 들으면서, 개발자로서 내 과거와 꽤 많이 겹쳤다. 누구보다 코딩에 몰두했던 어린 시절, 내 코드가 최고인 줄 알았던 시기, 그리고 점점 '잘 만든 코드'보다 '문제를 잘 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던 과정까지. 스케일은 다르지만 방향은 꽤 비슷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 선택을 되돌아보게 해준 고마운 기록이었다.

아직 다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좀 있다. PopeTV 쪽에 따로 정리해서 더 깊이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기술을 넘어서 전략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 그리고 생각보다 더 '사람'이 느껴졌던 자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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