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ineering in Plain Sight 리뷰: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장을 훑다가, 우연히 눈에 띄는 한 권의 책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Engineering in Plain Sight(저자 Grady Hillhouse). 솔직히 처음엔 그냥 그림이 예쁘고 첫 몇 장을 넘겼을 때 재미있어 보여서, 가볍게 '도감 같은 책이려니' 하고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단순히 "도로, 다리, 배수구" 같은 것들을 나열한 책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늘 곁에 있었기에 당연한 줄만 알았던 것들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기며 깨닫게 된 건, 이 모든 인프라가 '누군가의 설계와 노동, 그리고 정부의 투자'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은 도로와 구조물을 관리하려면 엄청난 세금이 필요하지. 세금은 낭비가 아니다" 정도의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생각을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단순히 '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라, 어떤 원리로,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왜 유지·보수가 필요한지를 하나하나 알게 된 거죠.
전력망과 통신망
책의 초반부는 전력망과 통신망을 다루는데, 여기서부터 이미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전기와 인터넷이 사실은 엄청난 설비 위에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죠.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예전 통신망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현대의 셀룰러 기지국(휴대폰 타워)까지 이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전봇대에 줄줄이 달린 케이블에서부터, 도심 곳곳에 세워진 은색 기둥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그냥 지나치던 풍경들이 하나하나 의미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도로와 터널
중반부에서는 도로와 터널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동차로 매일 달리는 아스팔트 위에도 수많은 공학적 고민이 숨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배수 설계, 포장 재질, 심지어 차선을 어떻게 그을지까지 다 이유가 있더군요. 터널 부분에서는 환기 시설과 조명, 화재 대피 통로 설명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동안은 "터널 안은 그냥 답답한 공간"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지나갈 때마다 천장에 달린 환기팬이 눈에 들어오고, 긴급 탈출구 표지판이 그냥 장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상수도와 하수도 (똥물!)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건 후반부에 나온 상수도와 하수도, 즉 똥물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깨끗한 물이 집에서 당연히 나오고, 쓰고 나면 그냥 내려간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뒤에는 수백 년의 기술 축적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책에서는 파이프 구조, 하수 처리 과정, 정화 시설 같은 것들을 그림으로 보여주는데, 솔직히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 덕분에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가는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 설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혼자 피식피식 웃었습니다. "이게 바로 똥물의 세계구나!" 싶더라고요. 😂
공사 이야기
마지막 챕터(8장)는 공사 이야기인데, 여기는 조금 밋밋했습니다. 대형 장비나 공사 현장의 모습 자체는 흥미롭지만, 그 직전 챕터에서 똥물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던 탓인지 상대적으로 덜 임팩트 있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나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7장이 워낙 강렬해서 8장은 그냥 '덤'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책을 덮으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제 시선은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세금이 많이 들어가겠지" 정도로만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이제는 구체적인 시스템과 사람들의 노고로 연결되어 떠오릅니다. 길을 걷다가도 맨홀 뚜껑, 신호등, 배수구, 휴대폰 타워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아, 이게 바로 책에서 봤던 그 구조물이구나' 하면서 혼자만의 재미를 느낍니다. 남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저는 이제 그 의미를 아는 거죠. 나름 꿀재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저에게 겸손과 감사를 동시에 심어줬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가는 똥물(!)부터, 도심을 지탱하는 철골 구조물까지, 누군가의 전문성과 땀 덕분에 제가 매일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 책은 키보드만 두들기며 살아가는 우리 같은 개발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컴퓨터 속 가상의 세계만 보지 말고, 실제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에도 눈을 돌려 보라는 거죠. '얄팍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벗어나, 진짜 똥물을 퍼 나르며 도시를 지탱하는 시빌 엔지니어의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 이게 바로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결국 실세계에 살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 Engineering in Plain Sight — 꼭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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